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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목 : 5월 12일 윌리엄 케리
Eun Ra  (Homepage) 2009-05-12 04:21:32, 조회 : 3,120, 추천 : 613


오늘은 5월 12일입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father of modern missions)라 불리는 영국 침례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년 8월 17일~1834년 6월 9일)가 세계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출판한 날입니다.

윌리엄 캐리는 ‘구두 수선공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였지만 하나님의 훈련시키심으로 학자, 언어학자, 그리고 선교사’(Shoemaker by trade, but scholar, linguist and missionary by God's training)였습니다. 당대에 몇 사람만이 선교적 노력으로 적대감과 무관심을 정복한 자였습니다.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데 주저하는 소심한 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영국 노샘프턴셔의 폴러스퍼리의 작은 마을에서 1761년 8월 17일 태어났습니다. 18세 되던 해 그는 영국교회를 떠나 그리스도를 따랐고 캠프도 없이 그분에게 나아갔습니다.

먼저 그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던 핵클턴(Hackleton)의 회중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곳에서 1781년 결혼하였고 영적 진리를 갈망했기에 10km나 되는 올니(Olney)까지 걸어다니면서 배웠습니다. 올니는 당시 엄격한 침례교의 요새였습니다. 1783년 10월 5일 세례를 받은 지 2년이 지난 후 학교장이 되었고 소규모의 침례교 회중교회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몰턴(Moulton)에서 캐리는 선교적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쿡 선장의 마지막 항해’(Last Voyage of Captain Cook)를 읽고 난 후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모험심을 심어줬지만 캐리에게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계시였습니다. 그는 이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캐리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이태리어, 덴마크어, 그리고 프랑스어 등을 하나씩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읽고 연구하면 할수록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향한 열정이 더욱 불탔습니다. 그는 읽고 또 주(註)를 달면서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구두 수선 가게에서 일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받아드리기 위한다면 모든 민족 가운데 복음을 알리기 위해 복음을 신뢰하기를 바란다.

 

캐리는 이 음성을 듣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선교적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선교현지까지 가는 일은 캐리가 극복해야하는 두 번째 문제였습니다. 캐리는 목회자들의 모임에 선교적 꿈에 대한 소견서를 제출하자 라일랜드(Ryland) 박사는 이렇게 호통쳤습니다.

 

젊은이! 여기 앉게나. 하나님은 이교도들이 개종하기를 정말 원하시네. 그분은 당신의 도움이나 나의 도움 없이도 일들을 성취하실 것이네.

 

또 다른 앤드류 풀러(Andrew Fuller)라는 분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들어 말합니다.

 

만약 주님이 하늘에 창문들을 내신다고 한들 그런 일이 있겠는가?

 

목회자 모임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교적 걸작을 써서 저항했습니다. 『이교도 개종을 위한 수단을 사용해야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임무이다』(Enquiry Into the Obligations of the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 사도적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선교사를 더듬고 세상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종교, 문화, 인구, 크기, 등등이었습니다.

캐리는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선교적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결과 ‘침례교 선교협의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결성하였습니다. 1793년 캐리는 인도로 갔습니다. 아내가 꺼렸지만 설득시켜 동행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자녀는 인도의 질병과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으로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세람포레(Serampore)의 덴마크 식민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로서 상스크리트어와 벵갈리로 성경을 번역한 분입니다. 1834년 그는 향년 73세의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40개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그는 선교사 친구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플 박사님(Dr. Duffle)! 저에 대해 말하셨습니다만 제가 죽은 후 아무 말도 말아주십시오! 하지만 캐리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만, 주님의 십자가만, 주님의 은혜만, 주님의 사랑만, 그리고 주님의 자비만 우리의 메시지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전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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