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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제목 : 5월 15일 단테
Eun Ra  (Homepage) 2009-05-15 01:02:04, 조회 : 2,835, 추천 : 488


오늘은 5월 15일입니다.

1265년 오늘 단테 알리그리에리(Dante Alighieri, 1265년 5월 14일 또는 6월 13일~1321년 9월 13 또는 14일)가 플로렌스 또는 피렌치에서 태어난 날입니다. 단테는 죽기 직전까지 대서사시, 즉 『신곡』(the Divinity Comedy)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의 비문에는 이렇게 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학자인 단테는 철학이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지식의 모든 부류에서 매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인물입니다.’

단테는 귀족 출신으로 7세 때 모친을 잃었고 부친은 1280년대 초 죽었습니다. 그러자 단테의 부친은 문학의 사람이며 정치인인 브룬네토 라티니(Brunetto Latini)가 되었는데 단테는 그를 『신곡』의 지옥 편에서 발견했습니다.

단테는 고전적이고 기독교 문학을 위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는데 12세 때 그는 미래의 아내로 겜마 도나티(Gemma Donati)와 약혼했지만 불행하게도 다른 여인 베아트리케(Beatrice)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겨우 9세였는데 말입니다. 몇 년 후 단테는 베아트리케를 다시 만난 후 그녀를 위해 여러 편의 단시(14행시)를 썼지만 자신의 시에서 아내 겜마 도나티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랑의 성격은 중세적 개념에서 여성들에 대한 이상적이고 정중한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단테는 1285년 겜마 도나티와 결혼하였지만 이상적인 여인은 여전히 베아트리케였습니다. 또 1287년 다른 여인과 재혼했습니다. 불행한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베아트리케는 1290년, 24세의 나이로 죽자 단테는 연구에 집중하여 시를 쓰는데 집중했습니다.

1289년 단테는 플로렌스 군대에 입대하면서 공직에서 활동했습니다. 여러 일들을 경험하면서 1302년 화형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추방당하여 조용한 곳에서 지냈습니다. 추방당한 가운데 단테는 『신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 그렇습니다만 어려운 가운데 놀라운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1321년 9월 13~1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곡』은 지옥(inferno), 연옥(purgatorio), 그리고 낙원(paradiso) 편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70-19 B.C.)와 베아트리케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낙원 편의 17장 55~60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모든 것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추방의 활에 있는 화살과 같습니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빵의 맛이 얼마나 쓴지, 얼마나 짠지 아셔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계단들에 오르고 내리는 자들을 위해 길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셔야 합니다.

 

단테는 『신곡』을 이태리어로 썼습니다. 왜 ‘희곡’(comedy)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어려운 질문인데 당시 저자들은 라틴어로 글을 썼는데 당시에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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