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때 나는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여행 자유가 없었던 시대라 뜻대로 되지도 않았거니와 재정상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서 해외 펜팔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공부를 잘해서 국가장학생으로 유학갈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전해지는 지구 다른 편의 나라와 문화에 대한 동경을 잊지 않았다. 오늘의 나를 알기 위해 다른 문화를 접해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진학한 후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분들을 통해 막연하게 꿈을 갖게 되었다. 언제 이뤄질 줄 모르지만 늘 기억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곤 했다.
나는 이 몸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세월도 꽤 걸린다. 나는 내 정신, 즉 내 영이다. 그 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해하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이제는 내가 이 육체가 아니라 영이고, 궁극적으로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실히 믿고 깨닫게 되었다. 내 자신이 비참해지거나 낮아지는 경험을 하기 전에 깨닫기 어려운 진실이다. 다양하게 이런 진리에 이르지만 나 역시 이 진리에 이르기 위해 인생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바른 길인지 확신하지만 이따금 “아니라면, 만일 . . . 아니라면” 이란 질문에 빠지곤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타인이 가르쳐주지 않고 알지도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아야 하나? 세뇌 당하여 내가 가지고 알고 걷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 여기진 않을까? 어떤 때는 여러 질문들을 되새기면서 묵상에 빠진다.
빛을 알기 위해 어두움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릇된 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에겐 이단 연구였다. 내가 고수하고 가르치고 살아가는 개혁신앙이 만일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뇌당하고 있다면 정말 억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세기의 사기일 뿐이다. 개혁신앙을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는 이단 연구에 집중하곤 한다.
박사학위 주제도 칼빈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칼빈이 이단자라 주목한 세르베투스를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세르베투스는 정말 이단자였다. 모반자였다. 화형을 당하는데 시대적으로 볼 때 당연한 자였다. 그가 억지 주장하는 것은 교회 역사 속에서 늘 그릇된 자들의 것이었다. 현재도 이와 유사한 것을 주장한다면 그릇된 것이다. 모든 것을 파악한 후에 결론내리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다. 지금도 개혁신앙이 바르다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은 주제이다. 하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나는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이단자의 주장인 아르미니우스와 그의 추종자의 글을 읽게 된다. 나만을 위함이 아니라 이와 같은 고민과 그릇된 주장을 하는 자들로부터 진정한 선택된 자들을 양육시키는데 정말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도 정말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