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일이 있다!

Eun Ra

｜ Date - 2005-12-28 21:12:51 ｜ Hit - 7760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잘 지내셨죠?” “뭐 여전하죠. 별 것 있나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래요~ 건강하세요.” 추운 겨울 매섭게 차가운 공기 속에서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거리면서 건네는 인사들이다. 뜨거운 차 한 잔, 커피 한잔이라도 있으면 집으로 향하는 또는 직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다. 빵빵거리며 지나가는 차들을, 정답게 손을 붙잡고 가는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모자들의 모습을, 두터운 장갑을 낀 채로 휴대폰을 들고 무엇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얇은 옷을 입고도 추위를 잊은 채로 이야기꽃을 한참 피우며 지나가는 연인들,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하나라도 많이 팔기 위해 소리를 치는 점원들, 또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팔기 위해 따뜻한 호빵, 호떡, 오징어, 생선묵, 또는 붕어빵을 만드는데 여념 없는 분들을 바라보면 기다리는 오랜 지겨움을 달랠 수 있다.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얼음같이 차가운 마음이라도, 아니 매서운 찬바람 가운데서도 두 사람이 포옹하면 따뜻해지고, 대화하면 정다워져 금세 추위를 잊는 듯하다. 아무리 텅 빈 주머니에 찬 공기만 있는 듯 싶어도 차가워진 손과 손을 붙잡고 있으면 금세 온정을 느끼면서 추위를 잊고 온 몸이 훈훈해진다. 따뜻한 구들이 생각나는 추운 겨울이다. 배럴에서 구워낸 군고구마와 따뜻한 찐빵 하나 들고 호호거리며 입에서 입김을 내뿜으면서 재잘거리며 대화하고 싶은 심정이다. 대화 속에 따뜻한 봄이 올 것이고 이렇게 춥다가도 무덥고 쨍하는 햇빛이 비췰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금세라도 추위가 풀려 무더운 여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굽어진 허리를 숙인 채로 버려진 종이 박스들을 챙기고 마시다 버려진 캔들을 망치로 두들기며 박스에 담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을 본다. 그들은 주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차가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본인의 일에만 아니 박스와 캔들에만 관심을 갖는다. 행단보도도 없고 육교나 지하도에도 관심이 없다. 사람 있고 차있었지 어디 차있었고 사람 있었느냐하는 식으로 살아가시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게 모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용돈 몇 천원을 갖고 무엇에다 쓰시는가?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는 지하철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집에서 만든 김밥’을 파시는 어르신네들, 요즈음은 채소들과 과일들까지도 들고 나와 계단에 마치 물건 진열이라도 하듯이 내려놓고 한 계단에 앉아있다. 용돈밖에 되지 않는 돈을 위하지만 되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구들이 있다면 그 추위도 잠시일 것이다. 아무리 추운 날씨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연인들이 백열전등이 켜져 있는 카페 등지에서 만나 행복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 한다.
방황하다가 오랜만에 찾은 예배당에서 추위를 피하고 싶어 들어갔지만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씨처럼 잠겨있는 교회 문들을 직면한다. 그래서 피하여 들어간 곳이 화장실이다. 그곳은 유일하게 추운 겨울 날씨에도 수도관이 얼어 터지지 않기 위해 따듯하게 해 놓는다. 화장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보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왜 이렇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 하면서 옷깃을 양손으로 옮기고 조금이라도 몸을 숙여 체온을 유지하려고 한다. 말이 한 번씩 몸을 터는 것처럼 온 몸을 한 번씩 틀면서 최대한 몸을 찬 공기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되면 관리인이 나와 교회 문들을 열고 난로에 불을 지핀다. 그러면 금세 예배당 안이 훈훈해진다. 공기가 그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처럼 안으로 들어가 앉아 방석을 몸에 덧붙이고 꽁꽁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녹이면서 손을 모아 우둑 커니 희미한 등불 아래 보이는 강단과 십자가상을 바라본다.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찾아 앉는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다가 불편함을 느껴서인지 외투를 벗고 몸을 옆으로 조심스럽게 흔들면서 중얼거리며 머리를 푹 숙이고 기도 올린다. 여러 사람들이 들어오고, 예배 시간이 되면 예배당을 환하게 비취면서 은혜로운 찬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누구든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템포로 찬송을 늘여 부른다. 호흡이 허락하는 한 길게 노래를 부른다. 희망이 있다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전파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멘’하는 소리와 함께 목사님의 뜨거운 기도로 새벽예배는 끝난다. 기도 후 모두들 어두운 예배당에서 고개를 푹 숙인체로 하나님께 간구한다. 어떤 이는 긴 의자에 올라 앉아 무릎을 꿇고, 벽을 향하고, 몸을 앞뒤로 흔들고, 두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한다.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순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얼었던 마음이 마치 따뜻한 봄날에 눈들이 녹고 가지에 새싹이 피어나듯이 녹아진다. 얼었던 입술이 열리면서 기도한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 내일을 바라보기에 현재의 일을 이겨낼 수 있다. 또 내일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 내일은 그분에게 속해 있다. 그분만이 내일을 아신다. 우리의 할 일은 오늘의 일에 충실 하는 것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지구가 회전하며 태양계를 돌듯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내일을 향해 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