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짧아도 길게, 간단해도 복잡하게, 그리고 재미있어도 생각하며 . . .

Eun Ra

｜ Date - 2006-01-30 12:11:03 ｜ Hit - 7839

방송에 출연하면 P.D.분들이 꼭 부탁하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쉽게 해달라고 한다. 물론 당위성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은근히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눈치이다. 시청자들이나 청취자들은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복잡하면 안되고 단순하게 ‘이것이다. 저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혀 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이 많은데 설교, 강의, 또는 방송까지 복잡하면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랜 후에 찾은 외국인들이나 이민자들에게 한국방문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문화적 충격이라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는 보편화되어 있는 휴대폰이다. 이 세상 어디서라도 볼 수 없는 최신형이다. 이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손쉽게 기억하고픈 내용이나 장면들을 언제든 즉석에서 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 그리고 한층 더 나아간다. MP3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무엇이든 녹음할 수 있다. 라디오도 장착되어 있어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휴대폰의 발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위성으로 영상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국민적 관심인 운동경기가 있으면 그래도 옹기종기 모여 정다움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각자가 들고 다니는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라도 시청할 수 있다. 정말 간편해졌다. 여기서 멈추면 좋을 텐데 휴대폰의 편리함은 바닥을 치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은행결재까지도 한다. 휴대폰이 이제는 신용카드를 대신하며 교통카드를 대신한다. 정말 편해졌다. 정말 간편해졌다.
강남의 부자와 강북의 부자가 다르다고 한다. 강남의 부자는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즐기는 문화이고, 강북의 부자는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기는 문화라고 한다. 아무리 편리한 것이라도 자연이 곁들여 있어야 멋이 더 빛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전원주택이 유행이다. 자연 속에 살면서 각종 문화를 갖춘 전원주택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이나 주말에 조용한 자연 속에서 숨 쉬고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귀하다. 기계 트레드 밀(tread mill)에서 달리는 것과 자연 속에서 달리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아무리 편리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행해야할 것을 행하는 것에서 행복이 생겨날 것이다. 아무리 일들을 로봇들이 효율적으로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 법이니까. 작은 칩에다가 모든 자료를 넣고 다닐 수 있어 편리하지만 한 번 잃어버리거나 지워져 버리면 그동안의 모든 기억은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종이에 쓴 것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칩에 저장한 것보다는 불편하지만 오래 간다.
걸어 다니면서 시장을 보았던 재래시장보다 요즈음은 조금 비싸더라도 차를 타고 가서 물건을 구입하기를 원한다. 쇼핑도, 음식도, 운동도, 엔터테인먼트도, 또는 모임도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해결하기를 원한다. 복잡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 모든 것은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처리되어야 한다. 김장김치도 담지 않는다. 담아도 김치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한다고 한다. 모든 편리해졌다. 더욱이 크리스마스카드도 글로 쓰는 정성어린 서신도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전자 메일을 보내기 때문이고,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떨까? 교회도 덩달아 점점 편리해지려고 한다. 주일 한 번 교회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과거에 있었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저녁예배, 그리고 성경공부 등 모든 것을 주일에 몰아서 행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바쁘다보니 월요일부터 막벌이로 살아야하니 평일에 교회당에 올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니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고 재미있는 설교를 원한다. 그리고 짧은 설교를 원한다. 마치 말장난하는 것처럼 설교해도, 강의를 해도, 만족하는 것은 너무나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교회에서라도 단순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말 외양적인 면에서 간단하고, 쉽고, 짧기 때문에 우리가 지고 다니는 무거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길게만 늘어지는 것, 복잡한 것, 그리고 사색적인 것만이 능사라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기우리려고 하는 것이다. 차를 우회전하면 운전자는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기울이는 것처럼 사회가 이처럼 한쪽 방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라도 다른 쪽으로 기울어져서, 신앙생활이라도 다른 면을 갖고 있으면서 균형을 갖추었으면 한다. 그래서 한번쯤 시골길을 걸어 다니고 싶다. 동전을 내면서 공중전화 버턴을 누리지 않고 돌려보았으면 한다. 쾌속으로 달리는 KTX보다 역마다 서는 통일호를 타고 강원도로 한번쯤 가보았으면 한다. 관광지에 다니면서 피곤하여 지치는 것보다 조용한 시골길에서 자연에 도취되었으면 한다. 연필을 손가락으로 들고 입술로 깨물어가면서 편지지에 글을 썼다고 다시 지우고, 다시금 새로운 종이에 쓰고 싶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어떤 때는 불편한 것도 좋은 때가 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고, 그리고 재미있는 것보다 힘들고, 복잡하고, 그리고 어려운 것도 가끔씩 행했으면 하고 제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