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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기독교 노조 결성을 바라보면서

Eun Ra 홈페이지 

   파일 1  기독교_노조02.hwp (30.5 KB)   Download : 104

 |  Date - 2004-05-10 10:31:53  |  Hit - 6537  
"크리스찬투데이" 실린 기독교노조에 관한 글입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chtoday.co.kr/template/news_view.htm?code=pd&id=3112

                             ‘기독교교회 노동조합’ 설립을 바라보면서

  2004년 4월 14일, 예수교 장로회(통합측)에 소속한 인천에 있는 경인교회(인천 계양구 서운동)를 담임하시는 이길원 목사님을 중심으로 인천지역의 교회 부목사님을 비롯한 운전기사님 등 5명으로 구성된 기독교회노동조합준비위원회(이하 기독교노조)는 인천 계양구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므로 교회에 행해지고 있는 실수들을 해결코자 출범했습니다. 더욱이 같은 달 29일 ‘노동조합 설립 신고증’을 정식으로 발부받음으로써 한국교회에서 최초로 기독교회노조가 탄생한 것입니다. 가입 대상들은 각 교회에서 수고 하시는 비정규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부목사, 전도사, 교회 사무원, 교회를 관리하시는 분, 그리고 운전기사님 등 교회에 근무하며 사례를 받는 분들만 아니라 심지어 신학대학교 비전임 교수님, 즉 시간강사님들이나 졸업자들과 더욱이 해직을 당한 교회에 관련 모든 분들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종교’라는 이름하에 강요당한 야만적인 근로관계가 교회노조의 설립으로 인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일에 관해 먼저 여러 가지의 옛 추억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이 직분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등록금은 고사하고 식사까지도 걸리면서 신학교를 다니셨던 여러 선배님을 기억치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례를 주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사는 것이라는 교훈들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교역자의 길을 누구든 걷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교역자의 길을 소명으로 보았지, 직업으로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직책도 소명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이지 그것이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 외 교회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 역시 주님의 일을 감당한다고 보았지 월급을 받는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한 일들을 감사함으로 보았지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현상적인 비교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역자들을 비롯한 수고하시는 분들이 대체적으로 외형적으로 사례가 아닌 대가로 처리되는 것에 관해 많은 상처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말 당회에 이르면 사례비 책정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곤 합니다. 액수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실상은 마음의 문제에서 더욱 상처를 받곤 합니다. 적게 받으면 적게 쓰면 되는 줄 알면서도 상처를 주는 쓴 말을 하면서 자행되고 있기에 사례 보다는 대가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례비 액수에 관해 불평을 하게 되며, 기쁨으로 봉사하기 보다는 세상직과 비교하기에 이릅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아노미 현상이나 다원화된 사회에 살아가기 때문에 매우 힘듭니다. 그렇다고 하여 사회적 문제들을 교회와 연관 지어 해결하려는 것을 반대합니다. 교회에서 부담스럽게 일하는 것을 노동착취로 본다든지, 부당 취급받는다는 것을 인권침해로 본다든지, 아니면 사례비를 적게 받는다고 하여 비정규직으로 보며 세상 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현상적인 비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근본적인 일보다는 현상적인 일이라도 해결코자 하는 행동주의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문제는 교회사에서 늘 대두되었습니다. 현재의 일들이 부조리하게 보인다고 하여 세상 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실수들과 비행들의 수 없는 실례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당시의 농민들은 동물과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지냈습니다. 루터가 쓴 『기독교인의 자유』를 읽고 힘을 얻어 12개 항목을 내걸고 1524-1525년간 궐기하여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보고 후기의 교회사가들은 그들의 애절한 상황들과 형편들을 인정합니다만 올바른 행위가 아니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또 사회이든 교회이든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현재의 일들을 해결하려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의 멸망을 둘러싸고 세속적인 역사가들은 기독교로 인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어거스틴은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가 번영한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축복하였다든지 어려움이 일어나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지 않은 것이라는 단순한 현상적 비교의식은 역사해석에 매우 기본적인 전제를 무시하는 처사임을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다른 측면으로 보아 교회의 일은 교회에서 처리해야만 하고 사회일은 사회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그것으로 해결해야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부조리가 감지되고 자행된다고 하여 세상의 법으로 해결코자 하는 자세는 더더욱 안되는 일입니다. 교회의 일들을 역시 행동주의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일을 보지 않고 현상적인 일들에만 집착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행동주의자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은 현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셋째로, 진리의 발견입니다. 교회의 개혁은 체제들을 변화시켜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한 대안은 사회조직이 되어서도 안되고 반드시 교회의 정체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현재 기독교노조에 관해 크리스찬투데이 인터넷 조사에 의하면 85%이상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체제들만을 변화시켜서는 교회 개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서 볼 때, 교회가 교리화 되어감에 환멸을 느끼면서 경건주의나 퀘이커가 일어나서 교회의 청결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바꾸지도 못했고 개혁을 행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발견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전에도 있었던 것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과거와 비슷한 현상을 만나면 비슷한 행동을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20세기 초반부터 일어난 1-3물결은 한국교회를 현상적으로 해결하고 진리를 발견치 못하는데서 이제는 ‘제 4의 물결’이라 할 수 있는 ‘영성신학’으로 교회 문제들을 해결코자 합니다. 물결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변화는 진리의 발견에서 비롯됩니다. 종교개혁에서 ‘이신칭의’라는 위대한 진리를 발견 했습니다. 어느 누구든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개혁들을 통해 역사는 바뀌어졌습니다. 한국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적해왔던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님들마다 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체제 몇 가지를 변화시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체제들을 국가의 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안됩니다.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는 처사들입니다. 그것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교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구조를 위해서는 진리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따르고 진리를 위하는 분들의 모임입니다. 진리라고 할 때에는 이전에 있었던 것을 답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발견할 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한국교회의 개혁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넷째로, 대안을 생각해 봅니다. 기독교노조를 결성하신 분들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분들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반대하는 처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위한 대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여러 신학자들이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으로 되돌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교회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고, 사회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교회, 즉 지역교회의 역할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교회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여러 면으로 봉사하고 모본을 보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의 재정을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을 위해, 걸식아동들을 위해, 장애자들을 위해, 연로하신 분들을 위해 교회는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면 사회를 직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를 위한 방안이 나올 것입니다. 사회를 몰라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로 발전되어가야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교회를 반대하여 돌린 세상의 시선이 다시 교회로 향하리라고 믿습니다. 사회의 아픔을 주님의 성육신을 본받아 우리의 아픔으로 삼고 그들 가운데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기독교노조와 같은 현상은 앞으로 한국교회 내에 지속적으로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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