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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성시화(聖市化)에 대해서

Eun Ra 홈페이지 

 |  Date - 2004-06-12 11:01:13  |  Hit - 6173  
                    성시화(聖市化)는 불가능하고 이루어져서도 안된다.

   역사의식(historical mind)이 없다는 말은 역사적 통찰력(insight), 세계관(world-view), 또는 해석적 능력(interpretational ability)이 없다는 말로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기독교인들에게 적용시키면 기독교적 역사의식이 필요하고 하겠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 아니 어떤 상이점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위대한 기독교 역사철학자인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을 들 수 있다. 로마제국의 서쪽, 즉 서로마가 게르만족들의 대이동의 시작하는 시기인 410년에 포위되어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때 그는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콘스탄틴 대제의 시기를 두고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어용신학 또는 제국신학(Rome-theology or imperial theology)을 내세웠다. 대표적인 사람이․『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를 유세비우스(Eusebius, )였다. 그는 콘스탄틴을 마치 고레스와 비교하여 331년 의 미완성 작품인 『콘스탄틴의 생애』를 쓸 정도였다. 또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결과로 보았다. 이러한 역사적 해석을 근거하여 볼 때, 서로마의 멸망을 제대로 해석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에 반해 어거스틴은 유세비우스의 견해를 반대한다. 로마에 대하여 엇갈린 두 가지 흐름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사이비 메시아적인 관점에서 로마를 보는 유세비우스의 경향으로 이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로마를 세상의 모든 악과 멸망의 근원이라고 보는 접근방법인데 이런 방법도 어거스틴은 거절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지상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동시에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지만 완성되지 않았다. 세상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속권을 결코 사용하지 않음을 분명히 나타냈다. 잘되면 하나님의 섭리고 그르치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는 역사관은 정말 그릇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려면 역사의식이 정말 필요하다.

   요즈음에 와서 한국교회에서 무슨 과정이나 분위기를 이용하여 한국교회를 갱생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 비근한 예로서 ‘성시화’라는 운동이다. 한 도시를 거룩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교회의 갱생은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독교 역사의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를 잠시라도 살펴보면, 어떤 운동을 통해 성도들을 언덕으로 몰아가서 가파르게 걷게 만들었던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한국교회 성도들을 궁지로 몰아가서, 어떤 위기의식을 심어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서, 갱생을 해보려는 것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

   갱생은 말씀을 연구하고 실천하는데서 비롯된다. 교회사에서 등장하는 갱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어두운 중세시기에 권력 아래 기생하며 살아갔던 시기에도 진리를 간직하고 보존하면서 행했던 무수한 무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종교재판이라는 미명아래 무수히 희생을 당했다. 하지만 진리를 보존되어 종교개혁을 낳도록 했다. 더욱이 종교개혁이 지나 정통시대로 접어들어 그 개혁을 온전히 완성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들이 발발하자 유럽인들은 진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의 갱생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자들의 공통적인 갱생 방법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정한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한 말씀이라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삶으로 실제로 보여주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 무슨 교회 내에 운동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에 십자군 운동을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다. 유럽인들의 수십만이 이 성지회복이라는 대 명제아래 뭉쳤다. 나라마다, 군주마다, 왕후마다, 수도자들마다, 교황마다, 교회마다, 심지어 어린이들마다 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200년동안 이 운동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증오심, 복수심, 타락, 면죄부판매 등과 같은 수많은 악들을 탄생시켰다. 갱생은 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인 실천이다.

   현재의 한국교회를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실례들을 교회사에서 찾아보고 연구하여 올바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일어나는 제 현상들은 이미 교회사에서 일어났고, 시행착오를 범했던 것들에 불과하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또 다시 역사적 실수들을 자행하고 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역사적 의식이 필요하다. 역사적 의식도 순환론적 역사관, 유대 기독교 역사관,  진보주의적 역사관, 역사주의적 역사관,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 있다. 순환론적 역사관은 역사가 동양철학처럼 단순히 돌고 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기독교 역사관은 직선적으로 역사가 나아가지만 하나님의 간섭이 있어 언제든 바뀐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적 역사관은 단순히 역사는 낙관론적으로 계속적으로 나아진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그리고 역사주의적 역사관은 절대적 가치를 두지 않고 누구든 그 나름대로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끝으로, 마르크스 역사관은 인간이 직접 행동주의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관 유형들 가운데 우리는 두 번째 유형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신다. 어제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셨는지 살피는 것과 그것을 유의 깊게 관찰하고 대안들을 찾는 일이 역사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세이다. 지금은 감정의 시대, 즉 낭만적 시대이다. 말씀이 갈급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이때에 한국교회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말씀의 회복만이 말씀의 준행만이 한국교회가 갱생하는 유일한 길임을 스스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것을 운동하지 말고 교역자 스스로, 성도 스스로가 말씀의 실천을 나타내 보여야만 한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다. 지금은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고 그 말씀을 준행해야만 하는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지 말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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