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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종말론적 삶을 향해

Eun Ra 홈페이지 

   링크 1  http://christiantoday.co.kr/template/news_view.htm?code=pd&id=3458

 |  Date - 2004-08-08 12:54:13  |  Hit - 6324  
  1992년 나는 30대 중반에 6세난 딸, 3세난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괴나리봇짐 10개를 들고, 안고, 매고, 그리고 끌면서 유학의 길을 떠났다. 언제 돌아올는지 기약을 할 수 없었다. 7년이라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10년이 훨씬 넘었다. 나는 떠날 때 순간들을 결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기에 써놓고 나는 그 순간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싶었다. 그 중에 특별히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떠나는 전날 밤, 나는 중환자실에 계시는 어느 장로님을 찾아뵌 것이 있었다. 뇌종양 수술을 한 장로님이 계신 병동에 아들과 함께 밤늦게 들어섰다. 그 장로님은 나를 알아보고 하시는 말씀이 “라목사님, 죄송합니다. 장로가 되어가지고 일어서지 못하고 교만하게 누워서 심방을 받습니다.” “괜찮습니다. 장로님! 실은 제가 내일 유학의 길을 떠나기에 마지막으로 장로님께 인사하러 들렀습니다. 실례인 줄 알고 쉬는 시간이지만 말입니다”라고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허리를 굽히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목사님, 장도를 떠나시는데 장로가 되어가지고 아무 것도 못 드리고, 마중도 못나가니 송구합니다. 라목사님!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머리맡에 있는 성경책을 집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가운데 10,000원 짜리 지폐 한 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꼭 가져가십시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수중에 이것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훌륭한 목사님이 되셔서 되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나의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약속하며 말씀드리기를, “장로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담임목사님과 함께 수십 명의 성도들이 찾아와 마지막 예배와 함께 인사를 하는 것이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마중 나온 권사님들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몇 분의 나이 드신 분들이 주머니에서 손때 묻은 1,000짜리 지폐를 꺼내어 손에 쥐어 주신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신다. “얼마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뵙지 못 하더라도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십시오”하며 눈물겨운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유학의 길을 시작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늘 종말론적으로 살아가신다. 지나온 과거보다 내일이 얼마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주님 부르실 날이 가까워 온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귀하고 의미 있다. 교회마다 부교역자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감사를 표현하는 분들은 대체로 나이 드신 분들이시다. 열심히 찬송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시는 분들도 나이 드신 분들이다. 또 먼 산을 쳐다보기도 하고 강아지처럼 마냥 즐겁게 뛰어는 거리의 아이들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허리를 손으로 턱턱 두드리면서 펴고 갈 거리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걸어가신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기에 보이는 하나하나가 귀한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인생은 참 고귀하지만 살처럼 빨리 지나감을 실감하는 역사의 증인들이시다. 골 깊은 얼굴의 주름살에는 남모르는 과거의 귀한 유산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 그 자체들이시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앞으로 만들어낼 시간과 추억들이 많이 있기에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늘 내일을 향해 화살을 당긴다. 그래서 종말론적으로 살아가라고 권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자세가 쉽지 않다. 실제의 삶은 내일이 마지막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말론적 신앙을 갖는 것이 경건한 신앙이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종말론적 신앙이 아니면 하루하루를 경건하게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고, 몸이 아픈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기가 쉽다고 한다. 그 이유는 종말론적 인생임을 경험하고 있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한 삶, 여유 있는 삶, 만족한 삶, 즐거운 삶, 바쁜 삶, 또는 사치스러운 삶 등등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종말론적으로 사고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주님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종말론적 삶이란 내일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삶이다. 아침의 해살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삶이다. 그래서 같은 날들이 반복한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날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날들이기에 귀하고 아름답다. 삶에 본분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시간, 건강, 사업, 가족, 생명, 가정, 그리고 사회 등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고, 주님께서 하게 하시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철저히 하는 자들이다. 지금 읽는 이 순간도 주님의 것이다.
  종말론적 삶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 온다고 막연히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의 일을 오늘에 마무리 한다. 내일은 기약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도 오늘의 괴로움을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셨다. 오늘에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지만 후회 없는 오늘을 보내라는 주님의 말씀이시다. 걱정도 염려도 내일이 있기 때문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기 때문에 염려가 있는 것이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걱정할 수 있을까? 내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의 할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성실히 살아간다.
  또 종말론적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을 명하시면 어떤 환경에 이르더라도 그대로 좇는다. 아니 그대로 될 것을 믿는다. 예를 들면, 로마로 압송되던 사도바울을 기억할 것이다. 태풍을 만나 어렵게 되었는데 주님의 사자가 곁에 서서 누구의 생명도 상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는다. 주님의 말씀을 환경보다도 더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은 곧 종말론적 삶이다. 누구의 권세 앞에서도, 환경 앞에서도, 직면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판단을 더 우선순위로 둔다. 종말론적 삶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아시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면 곧 종말론적 삶이다.

위의 글은 아래의 link에서 다시 읽을 수 있다.

50  오늘 하루도 Eun Ra 2004/12/22 6028
49  객관적 지식 Eun Ra 2004/12/13 6344
48  본향을 향하여 Eun Ra 2004/12/03 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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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주님의 임재를 깨닫는 삶 Eun Ra 2004/08/17 6309
32  기독교 문화적 삶 Eun Ra 2004/08/14 5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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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올바른 신학과 올바른 신앙을 위해 Eun Ra 2004/06/29 6053
27  성시화(聖市化)에 대해서 Eun Ra 2004/06/12 6296
26  인생은 완전치 않다. Eun Ra 2004/05/31 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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